"예술가는 과학자의 눈, 노동자의 손(근로자의 손), 철학자의 머리를 지녀야 한다." 이와 비슷한 문장을 십여 년 전에 어떤 책에서 읽었던 것 같은데 제목이 도저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제 가슴에 박혀있습니다. 예술가에게는 왜 과학자의 눈과 노동자의 손, 철학자의 머리가 있어야 하는지 제 생각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과학자의 눈
과학자를 정의하는 글을 찾아보면 '과학자는 자연계열의 지식을 드높이기 위해 과학적 방법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이론적 또는 물리적 실험을 하여 과학을 탐구하는 사람을 말한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연구하여 발표를 하고 그 연구한 것을 공학적 방법으로 응용하기도 한다.(출처:위키백과)'라고 합니다. 과학자는 사소한 현상도 쉽게 지나치지 않는 관찰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예술가에게 필요한 '과학자의 눈'이라는 것은 과학자처럼 자신의 예술을 표현하기 위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깊게 관찰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술치료사이자 미술선생님, 미술가였던 이디스 크레이머는 '예술은 자신의 경험, 즉 생각, 감정, 행동을 표현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예술로 표현하려면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이미지들 사이에 유독 눈길을 끄는 인상적인 이미지를 찾아내거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동물, 사물을 관찰하고 그 특징을 살려 미술로 표현하려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자세히 관찰하고 느껴야 합니다. 똑같이 그리기 위해서만 세심한 눈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다양한 면을 한 화지에 담아낸 피카소, 빛의 인상을 그린 인상파 화가들, 색채원근법으로 그림에 원근감과 공간감을 표현하고 해부학연구로 사실적인 표현을 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등 세기의 화가들은 그들만의 예리한 과학자의 눈으로 화폭에 실험하고 연구하며 자신만의 작품을 그리고 만들었습니다. 예술가에게 필요한 과학자의 눈이란 이런 사소한 현상을 지나치지 않는 감수성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눈으로 바라본 대상의 이미지들은 예술가들의 머리에 갤러리로 저장되어 있을 것입니다.
근로자의 손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노동을 한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정부수립 이래 "열심히 노동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근로자로 지칭합니다. 제가 읽었던 책에서는 '노동자의 손'이라고 쓰여있었지만 저는 '근로자의 손'이라 바꾸겠습니다. 예술가에게 '근로자의 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성실한 작업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술을 전공하기 전 저는 미술은 영감을 얻어 한순간에 그리는 거창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런 예술가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화가들은 좋은 작품을 그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작품을 발표합니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등으로 유명한 고흐의 예술인생은 8년으로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기간 동안 무려 8백여 점의 유화작품과 2천여 점의 드로잉 습작을 남겼습니다. 피카소는 일평생 약 15만 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을 작업을 한 시간을 대비하여 나누어보면 하루도 빠짐없이 약 4.5 작품을 했다는 결과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의 드로잉은 자칫 어린아이의 서투른 드로잉과 비슷하다고 생각되어 쉽게 그릴 수 있어서 다작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의 드로잉은 수만 번의 선으로 만들어진 그만의 개성 있는 선이기에 결코 쉽게 나온 선이 아닙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미술을 전공했을 때 좋은 작품을 위해선 성실하게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며 작업의 끈을 놓지 않고 싶어 노력했지만 결국 놓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 상황만 비관했지만 이제는 제가 작업을 하지 못하게 된 이유를 압니다. 그 이유는 성실하게 작업을 하지 않고 어려운 상황만 비관하고, 못하는 핑계만 대며 머리로 생각만 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든 잘하려면 잘하고 싶은 분야의 작업을 성실하고 꾸준히 해야 합니다. 특히 미술은 손의 역할이 크기 때문에 성실한 근로자의 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자의 머리
철학자는 넓은 의미에서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철학자의 영어명칭 'Philosopher'(필로소퍼)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고대 희랍어 '필로소포스'에서 유래했습니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철학자는 어떤 저자에 대한 이론이나 논평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 조건에 관한 존재론적인 질문을 푸는데 초점을 맞춘 삶의 방식을 따라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현대에 와서 철학자의 범위가 확장되어 미학, 윤리학, 문학, 인식론뿐만 아니라 예술과 같은 학문을 연구하는 자를 철학자로 간주합니다.(출처: 위키백과) 예술가에게 필요한 '철학자의 머리'라는 것은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거쳐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잘 그리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잘 그린 그림을 좋아합니다. 똑같이 그리고 싶어 하는 욕구도 있습니다. 대상을 재현하여 똑같이 그리는 능력은 잘 그리는 능력입니다. 하지만 좋은 그림인지 묻는다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앞서 언급한 이디스 크레이머의 생각과 동의하여 좋은 작품은 자신의 경험(생각, 감정, 행동)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똑같이 그린 그림은 작가의 경험이 빠진 반쪽 짜리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잘 그리기 위해서는 '과학자의 눈'이 가진 관찰력과 '근로자의 손'이 가진 성실함으로 대상을 재현하기 위해 훈련하면 됩니다. 물론 각자의 능력에 따라 시간의 차이는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가능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똑같이 그린 작품이라도 대상을 똑같이 그리는 것에 작가의 의도가 있는 것이고 다양한 표현법 중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되었다면 그 작품은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만의 감수성, 즉 '철학자의 머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상을 보는 예리한 관찰력인 '과학자의 눈', 작업을 위한 꾸준함과 성실함인 '근로자의 손', 자신만의 눈으로 바라보는 감수성인 '철학자의 머리', 이 세 가지 요소가 조화를 이루고자 고민하고 작업하는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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