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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이유와 지도방법 후기

by 쭈꼼 2023.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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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pixabay.com/ko//?utm_source=link-attribution&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image&utm_content=834275">Pixabay</a>로부터 입수된 <a href="https://pixabay.com/ko/users/kaleido-dp-1176973/?utm_source=link-attribution&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image&utm_content=834275">kaleido-dp</a>님의 이미지 입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kaleido-dp님의 이미지 입니다.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다 보면 드물지만 다른 친구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아이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따라 그리는 아이에게 친구의 그림을 따라 그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 제가 효과를 봤던 경험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따라 그리는 이유

재작년 여름,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를 지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친구들이 없어서 저와 일대일로 수업을 했습니다. 아직 그림을 그리는 것이 서투르고 낯도 가리는 성격이라 그런지 일대일 수업을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친구들과 같이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마침 아이의 스케줄 조정이 가능하여 일곱 살 여동생 2명이 수업하고 있는 시간에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 아이가 다른 아이의 그림을 따라 그린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미술시간은 너의 생각이 중요하니 네 그림을 그리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무척 불안해하며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아이가 왜 다른 아이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지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이유를 알기 위해 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는데 전에 다니던 학원에서도 따라 그리는 것 때문에 함께 수업하는 친구들과 문제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고민을 하던 중 문득 몇 년 전 SBS TV프로그램인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왔던 한 소녀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 소녀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소녀였는데 그 소녀의 인터뷰에서 '나의 머릿속에는 사진 갤러리가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이미지를 그린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그 소녀와 반대로 이 아이의 머릿속 그림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해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아이를 유심히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역시 주제에 맞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으니 그려진 그림을 따라 그리면서 그 이미지를 배우는 것 같았습니다. 이 아이의 경우 호기심이 무척 많고 에너지가 넘쳐서 무언가 사물을 찬찬히 관찰하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찬찬히 보면서 이미지를 보지 못하니 당연히 머릿속에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고 그리려면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그려진 다른 아이의 그림을 따라 그렸을 것입니다. 그림에 대한 자신감 부족도 원인인 것 같았습니다.  

이게 잘못된 행동인가

 20세기의 대표적 큐비즘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는 "나쁜 예술가는 모방한다.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The bad artist imitate, the great artist steal)"라는 말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표절이지만 그것을 가져와 내 것으로 만든다는 뜻일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선사시대 동굴벽화의 그림도 사냥감을 따라 그린 것이고, 모든 이미지들은 어떤 모델을 따라 그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도 아이들이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은 하지 말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상대방이 무척 싫어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그림을 누가 따라 그리는 것을 무척 싫어합니다. 불쾌한 티를 내고 불편해합니다. 속상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로 불쾌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따라 그리지 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두 번째는 따라 그리는 것이 자신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고 쉬운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아이의 경우에는 '따라 그리는 것이 꼭 나쁜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따라 그리는 것이 아이의 그림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릿속에 정보가 없는 것이 문제라면 따라 그리는 훈련을 통해 정보를 하나씩 쌓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제 최종 목표는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지만 그에 앞서 1차 목표로 어느 정도 따라 그리는 것을 수용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저도 나보다 더 잘 그리는 아이의 눈 표현을 따라 그려본다던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따라 그려보며 그리는 방법을 익히고 그다음 나만의 스타일로 그리려는 노력을 하면서 그림을 더 잘 그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따라 그릴 때면 그 친구의 기술을 훔친 것 같은 죄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어린 마음에도 그대로 그리는 것은 상대방의 창작물을 표절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몰래 따라 그려보고 서둘러 내 스타일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따라 그리는 것이 꼭 잘못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대신 그 과정 이후에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지도할지는 교사가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지도했던 방법과 현재의 모습

이 아이에게 따라 그리기를 허락하자고 마음먹었을 때 다른 아이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 끝에 먼저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규칙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마침 따라 그리는 아이가 여행으로 결석을 하게 되어서 다른 아이들에게 사정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언니가 너희 그림을 따라 그리는데 그럴 때 기분이 어떤지 물었습니다. 한 아이는 괜찮다고 했고 한 아이는 기분이 나쁘고 따라 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언니가 그림을 그리는데 자신이 없어서 어떻게 그리는지 배우고 싶어서 따라 그리는 것 같다. 나도 미술 선생님이지만 너희도 언니의 미술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몇 번 따라 그리는 것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횟수를 정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내 그림이 너무 소중해서 따라 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면 그때는 미리 선생님에게 말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규칙을 정한 뒤 아이에게 따라 그리는 것을 수용해 주고 정한 횟수를 벗어나면 하나라도 좋으니 변화를 주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일 년 이상 지도했습니다. 처음에는 똑같이 흉내 내어 그리던 아이가 점점 그림에 두려움을 덜어내고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려는 노력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주방을 주제로 그리기를 했는데 자신의 집 주방을 떠올리지 못해서 집에 가서 천천히 잘 보고 기억해 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머니께서 그 아이가 집에서 주방을 보며 선생님이 잘 보고 오라고 했다고 이야기하며 주방을 관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기뻤습니다. 예전에는 미술 수업과 상관없는 질문만 하고 집중을 잘 못했는데 이제는 수업에 관련된 질문들을 주로 하고 집중하여 그리기도 아주 잘합니다. 여전히 이따금 함께 하는 아이의 그림을 따라 그리기도 하는데 그 안에서 자신의 스타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이 아이를 통해 저도 따라 그리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만약 저와 같이 따라 그리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그게 꼭 나쁜 것인지, 왜 따라 그리는 것인지 잘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그에 적절한 해결 방법을 고민해 보십시오. 만약 제 케이스와 비슷하다면 이 방법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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